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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 <이사람>에서 이대건 명장 소개 작성일 : 13-05-09 10:51
1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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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농업(란) 명장이신 이대건 명장의 스토리가 2013년 5월8일(수)헤럴드 경제 Y23면 피플에 게재되었습니다.
게재된 기사를 올렸으니 참고 바랍니다.  


 


헤럴드 경제 <이 사람>


“한국 춘란 국내 점유율 겨우 1%” 


대한민국 고유춘란 39개 품종 개발


“세계화 위해선 대중화 선행 되어야”


 


난(蘭)에 미친 사람이 있다. 중학교 때 ‘농업’에 빠지면서 식물을 좋아했던 그는 대구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군대에서는 수목관리병으로 군 생활을 마쳤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난 그 자체였다. 난을 좇아 그의 인생 절반을 썼을 정도다.


 


주인공은 이대건(47ㆍ사진) 이대발춘란 대표다.


 


그는 대한민국 농업명장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난 전문가로 유명하다.


20대 후반부터 꾸준히 연구와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 고유의 춘란(春蘭) 39개 품종을 개발했다.


난의 예술성과 재현성 등을 고루 갖춘 한국 고유의 춘란을 개발해 낸 것.


 


지난 1995년 1호로 개발해 그가 명명한 ‘조일소’부터 가장 최근 개발해 등록한 39호 ‘황금성’까지 이 명장은 남들이 엄두도 못 냈던 일을 가능케 했다.


농업명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운이죠 뭐. 다른 거 있겠어요”라며 겸손해하는 이 명장. 그러나 이 명장의 인생 스토리에는 대한민국 고유 춘란을 통해 명장이 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DNA가 숨어 있다.


바로 ‘끈기’다. 난 공부를 위해 해외 유학까지 생각했던 이 명장은 우연한 기회에 국내 난 분야 최고 권위자였던 정정은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그러나 700만원을 호가하는 난을 도난당하고 스승에게서 쫓겨난다. 그럼에도 특유의 끈기를 보여 다시 스승의 신뢰를 얻었다. 스승으로부터 창업자금까지 도움 받아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


지만, 주변 공사장에서 흘러든 화학물질 때문에 난들이 모두 죽어 버린다.


하지만 이 명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더 열심히 대한민국 고유의 춘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명장은 국내외 난 경연대회에서 수차례에 걸쳐 입상했고, 2007년 아시아 태평양 세계난 전시대회에서 최연소 동양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또 자신의 춘란에 대한 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카데미를 열어 강의했고, 난 전문 박사학위까지 땄을 정도다.


한국 춘란에 푹 빠져 있는 이 명장에게 꼭 이루고 싶은 욕심이 하나 있다. 바로 난 선물용시장에서 한국 춘란의 점유율을 끌어올려 대중화시키는 것.


 


이 명장은 “한국 춘란의 국제화를 위한 전 단계로 우선 국내에서 춘란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동양난시장의 99%는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 들어온 난이 점령한 상태. 한국 고유의 춘란이 설 자리가 없다.


이 명장은 “정부에서도 한국 춘란보다는 서양란을 지원해주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리 고유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춘란을 1~2%까지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춘란이 그렇게 좋으냐는 물음에 이 명장은 “춘란은 야생에서 노루가 뜯어 먹는 풀”이라며 “그러나 춘란은 서양란과


 달리 같은 품종이라 해도 꽃의 표정과 색상이 난별로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런 한국 춘란의 미학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인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명장은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통해 한국 춘란의 세계화에 작지만 큰 기여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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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회 기자/okidok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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