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작성일 : 11-04-21 16:11
1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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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
롯데호텔 서울의 이병우 총주방장. 특급호텔들이 한식당의 문을 닫은 요즘 한식당 ‘무궁화’를 성공시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한식도 서양의 만찬이나 정찬처럼 서양인들에게 품격 있는 식단이 될 수 있다”며 “한식의 세계화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신라호텔 ‘한복 입장 불가’ 파문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14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김을동 의원이 “우리나라 특급호텔 10곳 중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이 4곳에 불과하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주요 호텔 한식당들은 2000년대 초반 적자를 이유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재 18개 서울 특1급 호텔 중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롯데호텔,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메이필드호텔, 르네상스호텔 등 4곳.
이 중 롯데호텔의 ‘무궁화’는 오히려 투자를 더 늘리는 역발상을 했다. 지난해 11월, 지하 1층에서 가장 노른자 층이라고 할 수 있는 꼭대기 층인 38층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문을 연 것. 결과는 대성공, 매출이 두세 배가량 늘었다. 무궁화의 변신을 진두지휘한 이는 바로 이 호텔 총주방장 이병우 이사(56·조리명장).
토요일인 16일 오전 11시 그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흰머리가 희끗한 단발머리의 그는 흰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독특한 예술가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이병우 요리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아왔다고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도심 풍경을 내다보던 그에게 먼저 ‘한복 파문’ 사건부터 꺼냈다.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조심스럽지만 이번 사건은 한복을 폄하했다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고객 입장에서 제대로 서비스를 했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명장의 서비스 철학은 무엇인가.
“주방장을 한다는 것은 돈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직업은 우선 남에게 베푸는 직업이다.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베푸는 행위 아닌가. 가장 좋은 요리는 내가 아니라 손님이 맛있어하는 음식을 내놓는 것이다.”
그는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 멋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끼면 좋은 서비스가 아니다. 과거엔 양식당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한꺼번에 놓고 손님들이 매너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음식이 나갈 때마다 새로운 포크와 나이프를 제공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잘된 요리’라는 것도 ‘손을 대기에 먹기 아까울 정도로 멋있는 요리’가 아니라 ‘먹고 싶어 손을 빨리 대고 싶은 자연스러운 요리’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해준 요리’라는 식의 답도 아니었다.
무궁화가 재개관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한식 코스메뉴를 도입한 것. 기존의 단품요리는 모두 없앴다. 음식을 한꺼번에 내놓는 게 아니라 식전 먹을거리, 전식(애피타이저), 죽, 생선, 구이, 후식 순서로 서양의 ‘코스 요리’를 도입했다. 메뉴 개발도 지지고 볶는 요리 대신 고기나 생선도 먹기 편하게 뼈나 가시를 발라 미리 빼고 후식에도 딸기화채에 카푸치노 스타일로 거품을 얹는 등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했다.
“한식도 서양인들에게 고급 정찬이나 만찬으로 거부감 없이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우선은 만찬, 정찬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한국의 맛, 한국의 정체성을 입혀야 한다고 본다. 요리도 이제 재료나 조리법에 경계가 없어졌다. 새로운 형태의 한식이 태어나는 세상이다. 여기에 주방장은 단지 요리만이 아니라 요리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그릇, 테이블웨어까지 다 공부하고 컨트롤해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 주인공은 교수나 관료가 아니라 주방장이다. 주방장을 키워야 한다.”
―성공하는 식당과 실패하는 식당의 차이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의 정체성.”
―이 명장의 정체성은 뭔가.
“서울롯데호텔의 모든 레스토랑을 책임지는 총주방장을 2001년부터 맡았다. 물론 회사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요리를 하나의 패션으로 생각해 감각을 도입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프랑스 최고요리사는 못 되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한국 사람이다. 내가 먹고 자란 한국음식에서 결국 승부를 내야 하지 않나. 그러면서 한식에 패션처럼 감각을 입히려고 노력했다.”
―1996년 호주요리대회에서 ‘아시아의 위대한 요리사’로 꼽혔다. 그때 내놓은 요리가 된장 소스를 곁들인 푸아그라(거위간) 고추장구이였는데….
“프랑스와 서울에서 먹는 거위간 요리가 같다면 굳이 한국에서 먹을 필요는 없다. 똑같은 재료를 쓰되 한국적인 맛이 나는 거위간 요리를 생각했다. 푸아그라는 지방덩어리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새큼한 맛의 소스나 단맛 나는 와인과 많이 매치해 맛을 중화시킨다. 나는 한국적인 매콤한 맛을 추가했다.”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패션 감각을 본다고 한다. 자기와 어울리는 옷을 입었는가 아닌가를 본단다.
대화를 나누면서 기자는 그가 왜 명장 칭호를 받았는지 이해가 갔다. 단순한 기술의 달인이 아니라, 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들이 그러하듯 요리 하나를 화두로 치열하게 궁리하고 고민해온 철학자의 면모가 읽혔다.
―한식세계화추진위원이라고 들었는데 꼭 한식을 세계화해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호텔들에 가보면 대개 대표 식당은 자국 식당이다. 그동안 우리는 타국의 문화가 선진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배우기 위해 몰입해 왔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한국스러운 것은 촌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그렇게 동경했던 세계가 막상 가보니 별것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것도 충분히 최고로 대접받을 때가 왔다고 본다.”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한식은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 세계시장에서 음식 문화처럼 침투력이 강한 것은 없다. 더구나 한식은 발효식품이고 건강식품이고 음양오행이라는 스토리까지 있다. 한국이 가진 철학을 바탕으로 한식을 세계화할 수 있다. 지금 모든 분야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먹고살 성장동력 찾기에 바쁜데 한식이야말로 그중 하나다. 한식당 하나가 세계에 진출하면 술, 식자재, 인력이 함께 나간다. 나는 외국인을 제대로 접대할 수 있는 한식, 색다른 한식을 개발하고 싶다. 한마디로 식격을 높이고 싶은 것이다.”
그는 요리사로는 처음으로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30년 가까이 조리 분야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현직 특급호텔 주방장으로선 유일하게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2010년 대한민국조리명장에 선정됐다. 명장 496명 중 조리명장은 그를 포함해 7명뿐이다.
그는 1979년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 조리학과에 입학했다. 요리를 제대로 하려면 프랑스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프랑스문화원을 드나들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파리에 있는 한국음식점 주방장 자리를 소개받고는 주저 없이 파리행을 택한다. 그리고 틈틈이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 시절 프랑스 요리를 배우는 한국 사람은 이 명장 혼자였다. 아예 프랑스 식당 웨이터로 옮겨 매일 14∼15시간씩 실습을 했다. 그리고 1982년 귀국해 롯데호텔 프랑스 식당에 취직했다.
“무엇보다 요리하는 사람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나의 내면에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1983년 방송대 영어과에 입학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2006년 주경야독으로 경희대 관광경영학과에서 ‘고객 시선이동모델 개발을 통한 최적 메뉴 디자인설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땄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VIP 고객, 자원봉사자 등 무려 17만840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총주방장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1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정상 만찬을 진두지휘했다. 후배 양성에도 열심이어서 2009년에는 박성훈 요리사를 지도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요리부문 금메달을 땄다.
―요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마디로 요리도 과학이다. 갈비찜을 만들 때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데이터도 나오고 있는 세상이다. 첨단요리기구들도 쏟아지고 있다. 요즘 주방장들은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요리사의 꿈은 결국 식당을 차리는 것 아닌가.
“주방장이 식당을 차리면 실패를 많이 하고 지배인이 하면 성공을 많이 한다더라. 요리사는 비즈니스 측면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아내의 반대가 컸다.”
―요리를 잘하려면….
“노력은 당연한 거고 재능이 있어야 한다. 뒤돌아보면 내 경우에도 손재주나 섬세한 성격이 업무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요즘은 요리사가 뜨는 직업이라는데….
“미디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요리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소수의 몇 사람 빼고는 대접도 소홀하고 돈을 그리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베푸는 직업이다 보니 보람이 크다. 나는 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행복해할 때, 접시가 깨끗이 비워져 나올 때 제일 기쁘다.”
―정년이 없는 것도 요리사의 큰 매력으로 보인다.
“하하. 맞다. 선배 중에 73세이신 분이 계신데 아직도 오라는 곳이 많다. 기술만 있으면 평생 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쉽게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부인은 요리를 잘하나.
“신혼 때 내가 잔소리를 좀 했더니 아내가 긴장이 돼서 음식을 못 만들겠다고 하더라. 그 후에는 절대 잔소리를 안 하고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이 중 롯데호텔의 ‘무궁화’는 오히려 투자를 더 늘리는 역발상을 했다. 지난해 11월, 지하 1층에서 가장 노른자 층이라고 할 수 있는 꼭대기 층인 38층으로 이전하면서 다시 문을 연 것. 결과는 대성공, 매출이 두세 배가량 늘었다. 무궁화의 변신을 진두지휘한 이는 바로 이 호텔 총주방장 이병우 이사(56·조리명장).
토요일인 16일 오전 11시 그를 만났다. 훤칠한 키에 흰머리가 희끗한 단발머리의 그는 흰색 유니폼을 입었지만 독특한 예술가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이병우 요리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살아왔다고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 도심 풍경을 내다보던 그에게 먼저 ‘한복 파문’ 사건부터 꺼냈다.
“같은 업계 종사자로서 조심스럽지만 이번 사건은 한복을 폄하했다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고객 입장에서 제대로 서비스를 했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명장의 서비스 철학은 무엇인가.
“주방장을 한다는 것은 돈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 직업은 우선 남에게 베푸는 직업이다. 요리하는 행위 자체가 베푸는 행위 아닌가. 가장 좋은 요리는 내가 아니라 손님이 맛있어하는 음식을 내놓는 것이다.”
그는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 멋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끼면 좋은 서비스가 아니다. 과거엔 양식당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한꺼번에 놓고 손님들이 매너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음식이 나갈 때마다 새로운 포크와 나이프를 제공하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그는 ‘잘된 요리’라는 것도 ‘손을 대기에 먹기 아까울 정도로 멋있는 요리’가 아니라 ‘먹고 싶어 손을 빨리 대고 싶은 자연스러운 요리’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해준 요리’라는 식의 답도 아니었다.
무궁화가 재개관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한식 코스메뉴를 도입한 것. 기존의 단품요리는 모두 없앴다. 음식을 한꺼번에 내놓는 게 아니라 식전 먹을거리, 전식(애피타이저), 죽, 생선, 구이, 후식 순서로 서양의 ‘코스 요리’를 도입했다. 메뉴 개발도 지지고 볶는 요리 대신 고기나 생선도 먹기 편하게 뼈나 가시를 발라 미리 빼고 후식에도 딸기화채에 카푸치노 스타일로 거품을 얹는 등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했다.
“한식도 서양인들에게 고급 정찬이나 만찬으로 거부감 없이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우선은 만찬, 정찬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걸 바탕으로 한국의 맛, 한국의 정체성을 입혀야 한다고 본다. 요리도 이제 재료나 조리법에 경계가 없어졌다. 새로운 형태의 한식이 태어나는 세상이다. 여기에 주방장은 단지 요리만이 아니라 요리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그릇, 테이블웨어까지 다 공부하고 컨트롤해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끌 주인공은 교수나 관료가 아니라 주방장이다. 주방장을 키워야 한다.”
―성공하는 식당과 실패하는 식당의 차이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맛의 정체성.”
―이 명장의 정체성은 뭔가.
“서울롯데호텔의 모든 레스토랑을 책임지는 총주방장을 2001년부터 맡았다. 물론 회사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했지만 요리를 하나의 패션으로 생각해 감각을 도입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프랑스 최고요리사는 못 되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한국 사람이다. 내가 먹고 자란 한국음식에서 결국 승부를 내야 하지 않나. 그러면서 한식에 패션처럼 감각을 입히려고 노력했다.”
―1996년 호주요리대회에서 ‘아시아의 위대한 요리사’로 꼽혔다. 그때 내놓은 요리가 된장 소스를 곁들인 푸아그라(거위간) 고추장구이였는데….
“프랑스와 서울에서 먹는 거위간 요리가 같다면 굳이 한국에서 먹을 필요는 없다. 똑같은 재료를 쓰되 한국적인 맛이 나는 거위간 요리를 생각했다. 푸아그라는 지방덩어리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새큼한 맛의 소스나 단맛 나는 와인과 많이 매치해 맛을 중화시킨다. 나는 한국적인 매콤한 맛을 추가했다.”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패션 감각을 본다고 한다. 자기와 어울리는 옷을 입었는가 아닌가를 본단다.
대화를 나누면서 기자는 그가 왜 명장 칭호를 받았는지 이해가 갔다. 단순한 기술의 달인이 아니라, 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들이 그러하듯 요리 하나를 화두로 치열하게 궁리하고 고민해온 철학자의 면모가 읽혔다.
―한식세계화추진위원이라고 들었는데 꼭 한식을 세계화해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문화를 수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호텔들에 가보면 대개 대표 식당은 자국 식당이다. 그동안 우리는 타국의 문화가 선진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배우기 위해 몰입해 왔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한국스러운 것은 촌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방면에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섰다. 그렇게 동경했던 세계가 막상 가보니 별것 아니네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것도 충분히 최고로 대접받을 때가 왔다고 본다.”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한식은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 세계시장에서 음식 문화처럼 침투력이 강한 것은 없다. 더구나 한식은 발효식품이고 건강식품이고 음양오행이라는 스토리까지 있다. 한국이 가진 철학을 바탕으로 한식을 세계화할 수 있다. 지금 모든 분야가 앞으로 우리나라가 10년 뒤, 20년 뒤에도 먹고살 성장동력 찾기에 바쁜데 한식이야말로 그중 하나다. 한식당 하나가 세계에 진출하면 술, 식자재, 인력이 함께 나간다. 나는 외국인을 제대로 접대할 수 있는 한식, 색다른 한식을 개발하고 싶다. 한마디로 식격을 높이고 싶은 것이다.”
그는 요리사로는 처음으로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30년 가까이 조리 분야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현직 특급호텔 주방장으로선 유일하게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2010년 대한민국조리명장에 선정됐다. 명장 496명 중 조리명장은 그를 포함해 7명뿐이다.
그는 1979년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 조리학과에 입학했다. 요리를 제대로 하려면 프랑스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프랑스문화원을 드나들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파리에 있는 한국음식점 주방장 자리를 소개받고는 주저 없이 파리행을 택한다. 그리고 틈틈이 요리학원을 다녔다. 그 시절 프랑스 요리를 배우는 한국 사람은 이 명장 혼자였다. 아예 프랑스 식당 웨이터로 옮겨 매일 14∼15시간씩 실습을 했다. 그리고 1982년 귀국해 롯데호텔 프랑스 식당에 취직했다.
“무엇보다 요리하는 사람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하찮은 일이라 하더라도 나의 내면에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1983년 방송대 영어과에 입학해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2006년 주경야독으로 경희대 관광경영학과에서 ‘고객 시선이동모델 개발을 통한 최적 메뉴 디자인설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땄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VIP 고객, 자원봉사자 등 무려 17만840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총주방장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1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정상 만찬을 진두지휘했다. 후배 양성에도 열심이어서 2009년에는 박성훈 요리사를 지도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요리부문 금메달을 땄다.
―요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한마디로 요리도 과학이다. 갈비찜을 만들 때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데이터도 나오고 있는 세상이다. 첨단요리기구들도 쏟아지고 있다. 요즘 주방장들은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요리사의 꿈은 결국 식당을 차리는 것 아닌가.
“주방장이 식당을 차리면 실패를 많이 하고 지배인이 하면 성공을 많이 한다더라. 요리사는 비즈니스 측면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아내의 반대가 컸다.”
―요리를 잘하려면….
“노력은 당연한 거고 재능이 있어야 한다. 뒤돌아보면 내 경우에도 손재주나 섬세한 성격이 업무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요즘은 요리사가 뜨는 직업이라는데….
“미디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요리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소수의 몇 사람 빼고는 대접도 소홀하고 돈을 그리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다만, 베푸는 직업이다 보니 보람이 크다. 나는 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행복해할 때, 접시가 깨끗이 비워져 나올 때 제일 기쁘다.”
―정년이 없는 것도 요리사의 큰 매력으로 보인다.
“하하. 맞다. 선배 중에 73세이신 분이 계신데 아직도 오라는 곳이 많다. 기술만 있으면 평생 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쉽게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부인은 요리를 잘하나.
“신혼 때 내가 잔소리를 좀 했더니 아내가 긴장이 돼서 음식을 못 만들겠다고 하더라. 그 후에는 절대 잔소리를 안 하고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 이병우 조리명장은
―1955년 서울 출생
―1981년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 조리전공 졸업
―1988년 한국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2006년 경희대 대학원 관광학 박사
―199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세계요리올림픽 한국대표팀 감독
―1996년 제1회 ‘아시아의 위대한 주방장상’ 수상
―기능올림픽 다수 지도
―2010년 대한민국조리명장
저서 ‘조리과학기술사전’ 등 다수
동아일보 (2011.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