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60돌 맞춤양복 전문점 '국정사' 3대 사장 양창선 명장
작성일 : 08-08-02 11:09
08-08-02
본문
부산 유일 대한민국 명장, 국정사 3대 사장 양창선 양복 명장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부산의 맞춤 양복 전문점 국정사. 부산양복협회 초대 조합장을 지낸 김필곤(작고)씨가 지난 1948년 설립한 국정사는 2대 김영곤(82) 사장을 거쳐 3대 현재 사장인 양창선(61)씨에 이르기까지 60년 세월 속에서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우동집 하나를 몇 대에 걸쳐 운영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부산에도 60년 동안 최고의 맞춤 양복을 지켜가는 장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60년을 넘긴 양복점은 부산에 몇 있으나 국정사의 60주년은 눈길을 끈다. 3대 사장 양씨는 부산에서 유일한 대한민국 양복 명장(2005년)이다. 또 전국기능대회 금메달을 휩쓴 10여명의 기술자들이 이곳을 지켜나가고 있다. 국정사는 장애인들에게 특화된 양복 기술을 전수했으며,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기도 했다. 지역의 양복업계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과 봉사를 통해 성장해 온 것이 국정사가 걸어온 길이다.
국정사에 얽힌 사연도 다양하다.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손님으로 거쳐갔고 4대째 국정사를 찾는 손님도 여럿 있다. 국정사의 양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가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와 취직을 축하한다며 맞춰주는 게 국정사 양복이다.
며칠 전 양복을 맞춘 손님은 50년째 국정사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양복을 맞추는 양씨의 비결이 있다. 손님의 몸 치수를 잴 때 체형과 근육의 발달 정도를 함께 본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꼼꼼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몸을 다 만져 보아야(?) 하는데, 그러고 나서야 제대로 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옷은 제2의 피부라고 했어요. 피부가 있다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잖아요. 옷은 그래야 명품이랄 수 있지요.
그간 세월이 많이 변했다. 이 광복동 거리는 한때 맞춤 양복점의 천국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엔 중앙동부터 광복동, 남포동을 거쳐 국제시장까지 300여곳의 양복점이 성업했죠. 현재는 10여곳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성복이 밀려왔고 IMF의 힘든 시기도 겪었습니다. '기술'만이 힘든 시기를 버티게 했습니다.
제주도 출신의 양씨는 양복점이 성업하던 시절, 양복을 배우겠다며 업계에 발을 디뎠다. 광복동의 고급 양복점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배운 그는 1981년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국정사를 찾아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이후 2대 사장인 김씨는 결국 양씨에게 국정사를 물려주기까지 됐다. 양씨의 기술과 국정사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대 고 김필곤 사장도 양씨를 꼼꼼히 살피면서 양씨에게 최고의 양복을 만드는 국정사를 오래도록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국정사는 100년을 꿈꾸고 있다. 꼬맹이 시절 양복점 안을 뛰어다니며 놀던 양씨의 아들 필석(27)씨가 물리학 공부를 접고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자꾸 다른 것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복수전공으로 패션디자인을 선택했고, 제대로 해 보자며 패션 공부를 더 했습니다. 패션 디자인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삼성아트디자인센터를 졸업한 필석씨는 지금 와이셔츠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1만2천 개의 바느질 땀이 들어가야 한 벌의 맞춤 양복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맞춤 양복은 '손맛이 들어간 옷'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세월이 변해도 사람이 느껴지는 옷은 영원할 것이라는 양씨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한편 국정사는 오는 25일까지 60주년을 기념하며 설립 이래 첫 할인혜택 등의 작은 이벤트도 열고 있다.
<자료 : 부산일보>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부산의 맞춤 양복 전문점 국정사. 부산양복협회 초대 조합장을 지낸 김필곤(작고)씨가 지난 1948년 설립한 국정사는 2대 김영곤(82) 사장을 거쳐 3대 현재 사장인 양창선(61)씨에 이르기까지 60년 세월 속에서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우동집 하나를 몇 대에 걸쳐 운영하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부러워하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부산에도 60년 동안 최고의 맞춤 양복을 지켜가는 장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60년을 넘긴 양복점은 부산에 몇 있으나 국정사의 60주년은 눈길을 끈다. 3대 사장 양씨는 부산에서 유일한 대한민국 양복 명장(2005년)이다. 또 전국기능대회 금메달을 휩쓴 10여명의 기술자들이 이곳을 지켜나가고 있다. 국정사는 장애인들에게 특화된 양복 기술을 전수했으며,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기도 했다. 지역의 양복업계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과 봉사를 통해 성장해 온 것이 국정사가 걸어온 길이다.
국정사에 얽힌 사연도 다양하다.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손님으로 거쳐갔고 4대째 국정사를 찾는 손님도 여럿 있다. 국정사의 양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가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와 취직을 축하한다며 맞춰주는 게 국정사 양복이다.
며칠 전 양복을 맞춘 손님은 50년째 국정사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부산의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양복을 맞추는 양씨의 비결이 있다. 손님의 몸 치수를 잴 때 체형과 근육의 발달 정도를 함께 본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꼼꼼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몸을 다 만져 보아야(?) 하는데, 그러고 나서야 제대로 된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옷은 제2의 피부라고 했어요. 피부가 있다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잖아요. 옷은 그래야 명품이랄 수 있지요.
그간 세월이 많이 변했다. 이 광복동 거리는 한때 맞춤 양복점의 천국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엔 중앙동부터 광복동, 남포동을 거쳐 국제시장까지 300여곳의 양복점이 성업했죠. 현재는 10여곳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기성복이 밀려왔고 IMF의 힘든 시기도 겪었습니다. '기술'만이 힘든 시기를 버티게 했습니다.
제주도 출신의 양씨는 양복점이 성업하던 시절, 양복을 배우겠다며 업계에 발을 디뎠다. 광복동의 고급 양복점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배운 그는 1981년 궁극적 목표로 삼았던 국정사를 찾아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이후 2대 사장인 김씨는 결국 양씨에게 국정사를 물려주기까지 됐다. 양씨의 기술과 국정사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대 고 김필곤 사장도 양씨를 꼼꼼히 살피면서 양씨에게 최고의 양복을 만드는 국정사를 오래도록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국정사는 100년을 꿈꾸고 있다. 꼬맹이 시절 양복점 안을 뛰어다니며 놀던 양씨의 아들 필석(27)씨가 물리학 공부를 접고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자꾸 다른 것들이 눈에 밟히더군요. 복수전공으로 패션디자인을 선택했고, 제대로 해 보자며 패션 공부를 더 했습니다. 패션 디자인의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삼성아트디자인센터를 졸업한 필석씨는 지금 와이셔츠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1만2천 개의 바느질 땀이 들어가야 한 벌의 맞춤 양복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맞춤 양복은 '손맛이 들어간 옷'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세월이 변해도 사람이 느껴지는 옷은 영원할 것이라는 양씨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한편 국정사는 오는 25일까지 60주년을 기념하며 설립 이래 첫 할인혜택 등의 작은 이벤트도 열고 있다.
<자료 : 부산일보>